
1. 문장과 맞춤법
저는 시드노벨의 강점을 높은 가독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포니테일 대마왕>과 <우리들의 커튼콜>에서는 그랬습니다. 이 두 작품은 일본어 번역투가 거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문장까지 깔끔해서 읽기가 꽤 편했어요. 그런 점에서 <프린세스 키스>는 꽤 실망스러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작가분의 글쓰기 경험이 조금 부족하신게 아닌가 싶네요. 일단 전체적으로 문장이 엉망입니다. 글을 써본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어설프게 형용사와 부사를 잔뜩 남발한다는 것인데, 이 작품은 프로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점이 눈에 많이 띕니다.
또한 오버하는 서술 - 쓸 데 없는 서술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술은 코믹한 상황에서 알맞게 사용한다면 독자를 즐겁게 할 수 있지만, 건조한 일상에서 시도때도 없이 사용하면 오히려 독자의 집중력을 헤치기 딱이죠. 잠깐 볼까요.
사실 이런 저런 사고의 과정도 필요 없다. 초등학교 6년에, 중학교 3년. 약간의 보너스로 유치원 과정까지 합하면 장장 10년의 세월 동안 은영에게 고백이라든가 여친이라든가 하는 단어는 머나먼 시리우스의 저편에나 존재하는 관측불가능한 소혹성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런 것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한 걸까?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주인공 신은영이 입학식 당일 처음 만난 여학생에게 갑작스레 고백을 받는 상황입니다. 뜬금없긴 하지만 별로 웃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갑작스런 고백의 두근두근함이 독자에게 전해져야 할 상황이죠. 하지만 이 앞에서 이미 '주인공은 얼굴도 꽝이요 몸매도 꽝인데 고...고
소녀의 뒤편에서 크게 바람이 불었다. 아마 복도 쪽 창문에서 들어온 강렬한 봄바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무슨 등장 특수 효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 바람은 소녀의 윤기 흐르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흔들었고,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단순한 자연현상마저도 그 소녀의 등장을 위한 것인 마냥 착각을 일으켰다.
이건 보는 제가 다 부끄럽더군요. 이 사람이 정말로 소설가가 맞는 걸까요. 위 같은 서술은 만화의 한 장면을 소설의 포맷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무작정 텍스트로 옮겨 놓은 것과 다를게 없습니다. 독자는 지금 만화를 보고 있는게 아닙니다. 라이트노벨이 만화의 연출 방식을 일부 빌려 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인물이나 작중의 상황, 클리셰에 해당되는 것이지 묘사 방법에까지 해당되는 것은 아니죠.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인물의 등장에 강한 인상을 주고 싶다면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 장면 묘사에 조금만 기교를 섞어주면 될 일입니다. 일부러 '등장 특수 효과' 같은 단어를 언급하면서 '여기선 강렬함과 신비함을 느껴주세요 헤헤'라는 노골적이고 저급한 주문을 할 게 아니라요.
이미 가루가 되도록 까인 맞춤법이나 오탈자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결전의 날이라면 조금 거창하지만 아무튼 토요일까지 별다른 사건은 없었다. 그저 매일 효린이와 같이 등하교를 하고, 학교에선 한나랑 잡담을 하거나 하며 보냈다. 매일 효린이랑 같이 등하교를 했다는건지 아니면 하루도 빠짐없이 등하교를 했다는건지 불명확해서요. 일단 전자로 보고 고쳤습니다. 효린이는 여전히 쌀쌀맞았다.
이건 좀 해도해도 너무한거 아닙니까? 시드노벨 편집부 정신 좀 차립시다.
책을 읽는 내내 위의 문제점들이 자꾸 눈에 띄어서 쉽게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책의 후반에 가면 좀 나아지긴 하는데 나아져도 병신 같기는 매한가지임. 딱 그냥 고등학생이 쓴 팬픽 수준입니다. 작가분이 20대 후반의 시나리오 작가라고 들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처녀작이라는 변명거리도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 작가라면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로 많은 글을 써왔을테니까요. 게다가 20대 후반이라면 경험 없는 초보 작가도 아닐테고요.
2. 캐릭터와 전개
전개를 따지면 더 실망스럽습니다. 우선, 딱 잘라 말해서 주인공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심지어 성격에 일관성도 없어요. 앞서 언급한 고백 장면이나 문효린과의 접촉에서 보여준 주인공의 소극적인 성격은 소꿉친구 조한나의 앞에선 감쪽같이 자취를 감춥니다. 문효린의 앞에선 말도 제대로 못하고 팬티만 봐도 위축되던 소년이 갑자기 뭔 약이라도 쳐먹었는지 한나에게 '나 사실 걔 팬티 보고 싶어서 사귀는거당ㅋ'라고 뻔뻔하게 고백을 합니다. 이게 똑같은 사람 맞나요? 아무리 소꿉친구가 편하다는 이유가 있어도 갑자기 사람이 그렇게 송두리째 바뀌어 버리면 독자는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프롤로그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중요한 시점임에도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는거죠.
캐릭터 중심의 소설인 라이트노벨에서 인물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건 독자의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것 외에 또 다른 부가적인 문제점을 낳습니다.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가 소설의 내용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건 자명한 사실인데, 이 인물이 이해할 수 없는 -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다닌다면 필연적으로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주인공 신은영은 자신을 노리는 공주 써스트(Thirst)와 처음으로 조우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할 뻔 하다가, 위험을 감지하고 달려온 문효린과 기사단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탈출하게 됩니다.(사실 이 부분도 좀 꺼림칙하지만 그냥 넘어가겠음) 그리고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라는 기사단의 명령을 듣고 존나게 도망갑니다. 여기까진 좋습니다. 그런데 얘가 잘 도망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이건 꿈이야라고 자기 최면을 걸더니 뜬금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독자는 이새끼가 왜 갑자기 꼴값을 떠는지 알 수가 없지만 바다와 같은 인내심으로 다음 설명을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 페이지를 펼쳐봐도 설명 그런거 없구요 주인공은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문효린에게 돌아와 있네요.
???
....너님 왜 돌아왔나요? 하다못해 카미조 토우마처럼 '여자애를 혼자 싸우게 냅둘 수는 없어!'라는 유치한 이유라도 좋습니다. 거창한 이유까지는 안 바라니까 최소한 전개가 납득이 가도록 설명을 해달라 이겁니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행동이 사고의 전환에 해당하는 부분 같은데, 그렇다면 두리뭉실하게 꼴랑 다섯 줄로 '내 눈에 흐르는 것은 땀인가 눈물인가'하고 끝낼게 아니라 독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심경의 변화를 제대로 설명했어야죠.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갑자기 주인공이 흘리는 눈물 몇 방울만으로 설명을 끝내버리면 뭐 어쩌라는겅미.
아무튼 그렇게 돌아온 주인공의 앞에 써스트와 싸우다가 무력화 된 문효린이 보입니다. 주인공은 죽을 위기에 처한 그녀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써스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어서 공주와 왕자가 키스를 하면 공주는 영원한 행복을 손에 넣지만 왕자는 뒈진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말을 듣고 어버버버버 정신줄을 놓고 있는 왕자 - 주인공에게 써스트가 다가와서 키스를 하는 순간! 우리의 진히로인 문효린양도 공주로 변신! 슬러터(slaughter)라는 중2병스러운 이명을 달고 써스트를 단 두번의 공격로 황천으로 보냅니다. 우와아아앙.
하지만 감동적(이었어야 했을)인 이 장면은, 위에서 말했듯이 어째서 주인공이 다시 돌아왔는가에 대한 답변이 제시되지 않는 이상 설득력이 있는 전개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 의문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계속 진행시키면, 주인공은 자의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캐릭터'가 되지 못하고 단지 슬러터의 각성을 위해 돌아온 '플롯을 따라 움직이는 광대'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해봐야 감동이고 지랄이고 당연히 있을 수가 없죠.
이 외에도 하는 짓은 완벽한 온건파인 유미아가 '우리편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나쁜놈이었다!'라는 뻔한 반전을 위해 과격파의 탈을 쓴 채 희생되기도 하고, 처음 비일상을 마주한 주인공이 단지 흥미롭다는 이유로 일말의 고민도 없이 비일상을 받아들이는 점이나, 자신 때문에 유일한 친구인 조한나가 성격이 바뀌어버릴 정도로 괴로워하는데도 죄책감 하나 느끼지 않는 주인공의 태도는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단지 성격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소꿉친구를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할 수 있는지 전 정말 알 수가 없네요. 냉정하게 말해서, 이렇게 자기중심적이고 막되먹은 주인공에게 공감 할 수 있는 독자는 아마 아무도 없을겁니다.
3. 설정
<프린세스 키스>의 비일상은 왕자(주인공)를 노리는 공주들(히로인)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기사단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뭐 좀 식상한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뻔한 떡밥에 자신의 색을 잘 입혀서 얼마나 재미있게 만드느냐가 관건이죠. 네, 구성 자체는 크게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비일상의 세계에 당위성을 부여해야할 구성 원리 - 설정이 너무 허술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나마 있는 설정마저도 제대로 된 설명이 없어서 작중의 비일상 전체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설정과 고증은 독자가 서술된 사실에 꺼림칙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만 되면 충분합니다. 소설이 허구라는 것을 모르는 독자는 아무도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독자는 설정이 다소 비현실적이라도 작품 속의 공리에 위배되지 않는 분명한 인과관계만 있으면 크게 의심하지 않아요. 이야기가 너무 새나가는 것 같지만, 잠깐 <헐크>의 예를 들어볼까요.
'방사능을 연구하던 브루스 배너 박사는 실험 중 감마선에 노출되어 그 영향으로 분노하면 괴력의 녹색 거인 '헐크'로 변하게 되었다.'
물론 감마선에 노출된다고 해서 실제로 사람이 녹색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브루스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유전자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 작품 속의 공리를 통해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인과관계도 명확하고요. 오히려, 작중에 등장하는 모든 비현실적인 현상을 하나하나 엄밀한 과학 법칙에 의거해 주절주절 과도하게 설명을 늘어놓을 경우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안테노라 사이크>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수 있겠군요. 요약하자면, 설정은 그냥 독자가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프린세스 키스>는 어떤지 한번 봅시다.
'공주란 변신을 통해 특별한 힘을 얻는 소녀들이다. 공주와 왕자가 키스를 하면 공주는 영원히 행복해진다. 왕자는 죽는다. 그리고 세계는 붕괴한다.'
책으로부터 독자가 얻을 수 있는 비일상에 관한 정보(설정)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몇 가지를 더 추론할 수도 있지만 확실하게 정해진 정보는 이게 끝입니다. 하지만 어떤가요? 그럴싸합니까? 제가 보기엔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최소한, 소녀들이 공주가 되는 이유와 그 조건은 무엇이며, 공주와 왕자가 키스를 하는데 왜 왕자가 죽어야 하는지, 그리고 세계는 왜 붕괴하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 -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을 것 같군요.
하지만 이 소설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하긴 하는데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해요. 써스트와 슬러터의 전투가 끝난 후, 유미아에게 위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안간다는 주인공의 반응(이 때 만큼은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원래 세상이란 불가사의 그 자체에요.'
헐.... 그렇군여? 브루스 배너 박사가 헐크로 변신하는 것도 세상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이고, 루피의 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이유도 세상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로군? 우왕ㅋ굳ㅋ
이렇듯, 이야기의 지지기반이 되어야 할 설정부터가 제멋대로이니 이후의 전개가 부자연스러운 형태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죠. 특히 이 작품의 핵심인 공주라는 존재가 불친절한 설명으로 인해서 당위성을 얻지 못한 것은 꽤나 치명적입니다. 현재의 세상에 불만을 가진 소녀들이 공주가 된다고 하는데(어떤 방법을 통해서 공주가 되는지는 묻지 마세요. 불가사의라잖아요ㅋ), 그렇다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소녀들이 공주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현재의 세상이 만족스러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하지만 실제로 공주가 되는 소녀는 겨우 5명 뿐이고, 거기다 또 이게 무슨 우연인지 그 중 원래부터 주인공과 관련이 있었던 소녀가 3명이나 됩니다. 이건 뭐 완전 작가 마음대로죠. 이런 식이면, 소재 떨어지면 대충 평범한 여학생 아무나 잡아다가 주인공한테 대쉬하게 만든 다음 '우왕ㅋ 사실은 나도 공주!'하면서 신간 하나 써내면 되겠군요? 무슨 요술지팡이 같네요. 우왕 존나 부럽다!
중심이 되는 공주의 설정으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존재나 세력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명확한 설명은 일절 없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대충 내용 전개에 맞춰서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색깔을 바꿀 뿐이에요. 안 그래도 개연성 없는 이야기가 더 엉망진창이 되는거죠.
당연하게도(?) 작가는 공주들의 세부적인 능력에 관한 설명 역시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작품이 능력배틀물의 탈을 쓰고 있으면서도 능력배틀물다운 매력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맙니다.
4. 능력배틀물로써의 <프린세스 키스>
드래곤볼과 같은 일반적인 배틀물의 재미가 정량적인 파워 수치를 가진 인물들이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발구르기 한방에 행성의 자전축을 흔들고 손짓 하나로 별을 파괴하는 화끈한 슈퍼파워 액션에 있다면, 능력배틀물의 재미는 비대칭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들(불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A와 물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B)이 과학적 정합성을 근거로(불의 힘을 가진 A는 물의 힘을 가진 B에게는 이길 수 없다) 벌이는 치열한 논리 배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는 이 비대칭적인 능력들을 토대로 싸움의 결과를 자기 나름대로 예상해보고, 그 결과가 자신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반전을 이룰 때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물론 그 반전은 작품의 공리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고, 또한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능력자물은 잘 쓰기가 매우 어렵죠.
<프린세스 키스>는 외형적으로 분명히 능력배틀물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과 똑같은 허상을 만들어내는 일루젼(Illusion), 세상의 어디라도 볼 수 있는 클레어보인스(Clairvoyance), 비실체화의 능력을 가진 엠프티(Empty) - 공주들은 단일화 된 수치로 파워를 비교할 수 없는 비대칭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들의 싸움은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을 선택하거나,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는 - 이른바 논리 배틀의 요소는 좆도 없고, 그냥 일방적으로 한쪽이 쳐발리다가 존나 뜬금없는 반전(차마 반전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이 일어나 역관광 때리고 끝나는 단순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엠프티와 슬러터의 싸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비실체화의 능력을 가진 엠프티는 슬러터의 공격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습니다. 이건 당연하죠. '실체'인 슬러터는 '비실체'인 엠프티를 만질 수조차 없으니까요. 반대로 '비실체'인 엠프티가 '실체'인 슬러터를 공격할 수 없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그러나, 뭔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엠프티는 슬러터를 존나 잘 팹니다. 왜냐구요? 나도 그게 궁금해요. 자신은 못 때리는데 저새끼는 날 존나 패는 - 말 그대로 최악의 적을 만난 슬러터는 너무 많은 공격을 받아 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 갑자기 주인공이 난입! 이후, 슬러터는 주인공과 재미도 감동도 없는 대사를 몇 마디 주고 받더니 다시 한번 뜬금없이 타이런트(Tyrant)라는 공주로 각성해서 엠프티를 개관광 보냅니다.
...아 다시 봐도 정말로 병신같군요.
엠프티가 어떻게 슬러터를 패는지에 대한 과학적 정합성 부분은 넘어가고, 슬러터가 타이런트로 각성하는 부분을 볼까요. 반전이라는게 독자가 미리 예상해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에서 이 반전은 일단 성공을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독자를 속아넘기기만 해서는 제대로 된 반전이라고 할 수 없어요. 독자가 'A'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도록 일부러 많은 정보를 흘린 다음, 제시된 정보들의 논리적 허점을 이용해서 'B'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반전이야말로 독자가 예상할 수도 없고 카타르시스도 있는 제대로 된 반전이지, 루피가 그냥 맨몸으로 싸우다가 '사실 난 악마의 열매를 쳐먹어서 몸이 고무처럼 늘어난다!'하면서 고무고무 바주카로 적을 날려버리는게 반전입니까?
이건 설정의 부실함과도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반전이라는 것이 제대로 된 구실을 하려면 사전에 독자에게 많은 정보들이 주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설정이 부실한 탓에 능력자들(공주)의 상세한 능력치를 알 수가 없다고 위에서도 말했죠. 이 상태라면, 아무리 논리적으로 반전을 잘 구성해도 그건 실패한 반전입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을 논리적으로 연역해내는 것이 바로 능력자물의 반전인 것인데, 독자가 아예 '예상' 자체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거든요. 말하자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거죠.
<프린세스 키스>의 1권에서 전투는 단 2번 일어나는데, 2번의 전투가 모두 이렇게 진행됩니다.
1. 써스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던 문효린이 복선도 없이 갑자기 슬러터로 각성하고 역관광.
2. 엠프티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던 슬러터가 복선도 없이 갑자기 타이런트로 각성하고 역관광.
이딴게 재미있을 수가 없죠. 그나마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각성이 일어나서 한쪽이 이기는거면 박진감이라도 있지, 이건 한쪽이 처참하게 쳐발리다가 각성 이후에 반대로 처참하게 쳐바르기만 하니까 그런 것도 없어요. 오히려 노골적인 묘사 탓인지 잔인하기만 합니다. 이 부분은 취존중의 차원이니까 별 말 않겠습니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5. 총론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린세스 키스>는 망한글입니다. 넵, 망한글.
이 작품은 현재 시드노벨이 앉고 있는 문제점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어요. 뭔가 본 건 있어서 소재는 나름 잘 가져왔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필력이 땅바닥이라서 나오는건 함량 미달의 수준 낮은 글들 뿐. 그마저도 어디선가 본 듯한 클리셰로 범벅이 되어있어서 이건 뭐 되다 말았다는 느낌?
이건 작가 자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사실 편집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편집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사실 몇몇 부분은 편집 단계에서 충분히 손 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건 작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시드노벨 편집부의 공동 책임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게 아니라면, 편집으로도 감당이 안되는 작품은 애초에 팔아먹을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죠. 하긴 뭐, 이런 걸 팔아야 할 정도로 시드노벨에 좋은 작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니 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덧글
제렘 2009/02/16 00:02 # 답글
횽 몬헌 못한 보람이 있어우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즈 2009/02/16 19:22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횽도 녹턴 수고했음 ㅇㅇ
쌈마이 2009/02/16 00:29 # 답글
응끼앾꼐이!!!!!!!!!
리즈 2009/02/16 19:23 #
넌 걸리셔스임ㅋ
레이트 2009/02/16 01:05 # 답글
문제는. 어쩐지 기대되는 물건 하나라는 점+2권으로 이 소설이 결정난다+어쩔 수 없는 건 2권이 너무 걱정된다. 정도?
리즈 2009/02/16 19:23 #
헐... 2권이 끝이었나요 이거;
레이트 2009/02/16 23:39 #
아니. 이 소설의 미래....
PHugsy 2009/02/16 05:43 # 답글
링크 물어갑니다^^...
리즈 2009/02/16 19:23 #
네 감사합니다
하타브 2009/02/16 08:59 # 삭제 답글
존나 뭘 그리 거창하게 쓰나했더니 쩌네효 ㅋㅋㅋㅋ
리즈 2009/02/16 19:37 #
ㅋㅋㅋ
거북이배 2009/08/21 15:21 # 삭제 답글
리뷰를 정말 잘 쓰시네요....재밌게 쓰신데다.이 책의 문제점이 무었인가를 꼭 집어내시니.....ㄷㄷㄷ